내게 테니스는 또 하나의 관계의 통로이다.
솔직히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코로나 격리기간을 겪으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우울감을 떨쳐내고자 테니스를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살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러니 사람을 사귀거나 테니스 시합을 하고픈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코치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세대 차가 나는 나이든 코치를 택했다.
그만큼 교감할 것이 적으니 말 섞을 일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레슨 받기 직전과 직후에 인사만 했다.
두 달쯤 지났을까?
코치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뭐하시는 분이세요?”
“에… 목사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아니, 어떻게요?”
“그렇게 보였습니다.”
연륜이 주는 지혜와 안목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그후로 코치님과 나는 가끔씩 대화를 주고 받았다.
코치님은 부인이 권사라고 했고,
나는 ‘대화로 푸는 성경’을 선물했다.
지난 달 테니스 엘보가 오기 시작했고, 6월 들어와서 두 주간 레슨을 쉬었다.
나는 약속이 없을 때는 오른손 하박에 맨소래담 로션을 바르고 손목과 팔꿈치에 각각 압박밴드를 하고 지냈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왼손으로 받쳐야 했다.
아주 좋은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나아서 레슨하러 갔더니 코치님이 아주 반가와하셨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온 일제 파스를 내미셨다.
“저도 집에 맨소래담 로션도 있고 파스도 있습니다.”
“압니다. 근데 내가 엘보를 달고 살아서 집에 많으니까 하나 주는 겁니다. 요거 본 적 있습니까?“
”아니요, 처음 보는데요.“
”요게 동그랗고 간단한데 잘 듣습니다.”
내 손목과 팔꿈치를 여기저기 만져 보시더니 직접 파스를 붙여주셨다.
그리고 갖고 온 나머지 파스를 내게 주셨다.
내 느낌엔 부산 남자가 선물을 신경써 고르고선 “오다 줏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최근 테니스 레슨을 나서며 약속이 있는 셋째와 동행했다.
“아빠, 이번 주말부터 장마 시작이래요.”
“장마? 27일이 테니스 회비 내는 날인데…”
“한 달 쉬세요. 팔도 안좋으신데.”
“장마라고 한 달 쉬면 코치님은 한 달 동안 수입이 없어지는 거잖아. 연세가 일흔이신 분이 수입이 없으면 안되잖아. 의리가 있어야지. 감사하게도 이 코치님은 장마철엔 반반씩 손해보자고 하셔. 다음 회비 내는 시간을 2주 늦춰주시는 거지.”
“나름 괜찮네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1년 넘은 꾸준한 만남이 서로를 생각해 줄 정도의 또 하나의 관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