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 만남

부산에 내려와서 30여 년만에 만에 고3때 급우를 만났다.
비신자 친구는 처음에 급우가 목사가 되어 나타난 것을 신기하게 여겼으나 나중에는 종교와 인생에 관한 질문과 생각을 내게 많이 터놓았다.
그 후론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만났는데, 지난 석 달 정도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만나지 못했다.

친구는 한글날에도 출근을 했다.
다음날 현장팀이 아침 일찍부터 작업할 내용을 미리 작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친구가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오전에 이기대 산책로를 두 시간 이상 걷느라 피곤했지만 그러자고 했다.

친구 집이 있는 남천동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휴일 저녁이라 차량 정체가 심할 것 같아 지하철로 움직였다.
친구는 자기가 종종 가는 퓨전 식당으로 안내했다.
오후 6시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먼저 음료를 주문했다.
친구는 맥주를 시켰고, 나를 위해 무알콜 음료를 주문했는데 딸기와 코코넛이 섞인, 한마디로 초딩 입맛이었다.

맥주와 무알콜 칵테일의 건배 [사진 강신욱]

식사 메뉴는 주인의 추천에 따라 ‘띤따 프리또’를 시켰는데, 이건 먹물 오징어 튀김이다.
완전 검은색이라 특별한 맛을 기대했지만 그냥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징어 튀김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맛이었다.
주인이 조심스럽게 입맛에 맞냐고 묻길래 맛있다고 했다.
주인은 실망스러울 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오징어 튀김 바로 그맛이라 맛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보던 친구는 터키식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친구도 지나가다가 본 곳이라 처음 가본다고 했다.
골목을 여러 개 지나 카페에 도착해 보니 폐점 시간이 저녁 8시였고, 마지막 주문이 저녁 7시였다.
우리는 7시 20분에 도착했지만 테이크아웃이라고 해서 마지막 주문이 됐다.
터키식 커피는 뜨거운 모래에 커피를 끓였다.

회색 뜨거운 모래에서 끓는 커피

주인은 마감시간이고 테이크아웃이라 약식으로 했으니 다음엔 거름종이 없는 정식으로 한번 마셔보라고 했다.
밑에 커피가루가 그대로 있는 커피를 말하는 것 같았다.
커피는 아주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미는 없었지만 고소한 맛과 단맛이 났다.
친구와 나는 다음에 꼭 정식 터키식 커피를 마시자고 합의했다.

재건축이 결정된 삼익 비치타운을 내려다 보는 곳에서 멈춰 서서 친구와 대화했다.
친구는 친척 중에 기독교인이 있는데 타종교는 틀렸다고 하며 기독교를 강요하는 그 친척의 태도가 싫다고 했다.
나는 성경을 읽으며 자신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목사나 기독교인이 의외로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기독교를 강요하는 성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친구는 내가 목사지만 기독교를 강요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기독교가 옳다는 걸 강요로 나타내는 건 거부감만 가져올 뿐이다.
옳고 탁월하다면 오래 기다려주고 천천히 알려주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대방도 존중하고 마음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