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내 뒤에 앉았던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다.
다른 일정을 위해 나서려다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도 갈 수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약속된 일정을 먼저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친구와 그 가정은 비기독교라서 빈소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영정에는 절을 하지 않았지만 상주와는 절을 하며 예와 위로를 표했다.
“우리가 얼마만에 만난거냐?”
“고3 이후로 처음이니까 35년 만이지.”
“나는 페이스북으로 네가 어떻게 사는지 계속 보고 있었어.”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
“정말 열심히 잘 사는 것 같더라.”
“이 시대 가장이 다 그런거지 뭐. 전에는 거의 기독교인만 만났는데 이제는 두루두루 만나려고해. 그래서 이제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야.”
“생각 잘했다. 안그래도 따로 한번 연락해서 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그런데 아버지 덕분에 널 보게 되네.”
“아버님이 주시는 마지막 선물인가 보다. 난 10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나서 마치 가림막이 사라진 것처럼 힘들 때가 있어.”
“야, 넌 역시 효자구나.”
“효자는 무슨,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생전에는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못하고 말야.”
“우리 때는 다 그랬지.”
“장례식 때는 힘들면 울기도 해라.”
“안그래도 몇 번 울컥하더라.”
“그때 참지 말고 울어라. 나중에는 장례식때 더 울고 싶었는데 울지 않은 것도 후회되더라.”
“그래, 좀 울어야겠다.”
“목사라서 장례를 많이 경험해 봤지만 직접 겪어 보니 훨씬 복잡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많더라. 너무 지치지 않게 건강관리 잘해라.”
“그래, 와줘서 너무 고맙다. 따로 함 보자.“
”그래, 나중에 연락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