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기독교인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60대 남자 비신자 2명을 소개하고 싶은데 만나서 복음을 전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 2명은 토요일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맞추다 보니 4월 6일 오후 2시로 약속을 잡았다.
소개하는 분까지 3명이 주말의 교통정체를 뚫고 약속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나는 오히려 오전 성경공부가 다른 때보다 늦게 마치는 바람에 약속시간 15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커피와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무신론적 사상을 배경으로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살아 자수성가했으며 여전히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남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분들과 철학, 과학, 사회생활 등 탄탄하고 방대한 상식을 바탕으로 내게 화두를 던졌고, 나는 이분들과 2시간 넘게 대화했다.
물론 성경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벽에다 소리만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제법 흐른 후, 한 분이 내가 목사라는 것 때문에 최근 심적으로 힘든 부분을 꺼내며 조언을 듣고 싶어했다.
나는 내 쓰라린 경험을 말하며 ‘용서’와 ‘화해’를 구분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분은 내 이야기를 드고는 목사님도 그렇게 어려운 경험을 했느냐며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주 유익했고, 뭔가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쌀쌀했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호의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대화로 푸는 성경 : 창세기’에 두 분의 이름을 각각 서명해서 선물했다.
“여러분들과 같은 비신자와 성경에 관해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긴 책이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일단 책을 읽고 한두 달 뒤에 다시 만나자고 대략적인 약속을 잡았다.
모임이 끝났을 때 나는 맥이 풀릴 정도로 지쳤다.
누가 내게 “정말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고, 날 위해 기도해 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