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골 문화센터에서 부산기윤실 사무총장 가정호 목사님을 뵀다.
나를 늘 ‘브라더’라 부르며 격려해주시는 분이다.
이번 낮은울타리 3주년 책자를 위해 글을 써주셨다.
”오~ 제 글이 제일 앞에 있네요.“
”조상의 덕을 입으셨습니다. 가나다순으로 편집했거든요.”
"낮은"을 택한 것이 인상 깊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높음을 추구한다면 이는 분명 잘못 조향 되어진 삶이다.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하방 동행하시기 위해 낮은 자의 자리로 오셨다. 낮은을 택한 그는 어느 순간 비범한 결정을 한 것이다.
"울"과 "타리" 는 연합과 협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공간구성의 요소이다. "울"만으로는 공간을 만들기가 어렵다. 울을 이루는 "타리"가 있어야 비로서 입체적인 공간, 거룩을 담지한 공간이 된다.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시는 것이 "울"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은 "타리"를 이루어야 한다.
"타리" 를 이루려면 하나님을 닮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넉넉해야 가능하다. 신욱 브라더는 낮은 울타리를 닮았다. 낮은 곳으로 가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그의 하방동행은 몸에 밴 습관처럼 자연스럽다. 오늘 여기에 이르기까지 어제 얼마나 자기부인의 고통이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를 만나 담화를 나누다 보면 불현듯 그의 실천적 하방동행을 배우고, 닮과 따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지금보다 좀 더 곁에 있다 보면 닮아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가 세상을 해석하는 특성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옹골차게 걷고자 허울 좋은 명예와 칭찬과 찬사와 안락함을 외면하는 삶을 택했다.
나는 그런 그가 좋다. 주님에게서 시원되어 그를 통과한 서늘한 사랑이 급기야 내게 도달했을 때는 놀랍게도 넉넉하게 덥혀져 있음의 신비를 느낀다. 낮은 울타리가 부산이라는 로컬의 공간을 서서이 감싸 안아 가고 있다. 주님으로 부터 받은 그의 울과 타리 안에서 더불어 걷는 즐거움을 생애 내내 누리고 싶다.
- 가정호(부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무 사무총장, 세대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