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울타리 흡연 사태

고교 친구들이 낮은울타리를 방문했다.
고1때 만났던 친구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37년만에 만나 일단 서로의 추억을 더듬으며 기억의 퍼즐을 맞췄다.

친구가 뭔지, 40년 가까운 세월의 간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말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인생과 신앙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한 친구는 모태 신앙인데 20년간 교회를 떠났다가 최근에 돌아왔고, 한 친구는 불교 신자로 살다가 최근에 예수님을 믿게 됐지만 직업상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불교 신자였던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향 공양(?)을 하러 나갔다가 오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들어오기 전에 한동안 못 피울 것 같아 두 개피를 피고 왔지만 지금 당긴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가 끊어지니까 그냥 여기서 하라고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은울타리에서 흡연사태가 벌어졌다는 걸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실내흡연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지만 지금 이 친구들에게는 응급상황이라고 여겨서 예외적으로 허락을 한 것이다.

친구들이 베란다로 나가며 내게 물었다.
“혹시 재떨이 없냐?”
낮은울타리를 정말 낮고 편하게 본 모양이다.
재떨이가 없다고 하니 급하게 휴지 몇 장을 겹쳐서 응급 재떨이로 사용했다.
나는 담뱃재가 뜨겁지나 않을까, 손을 데지는 않을까, 바람에 휴지가 뒤집어지지는 않을까 보는 내내 불안했다.
종이컵이 있던 게 생각나서 불안감을 떨쳤다.
둘이서 네 개피를 피운 것 같다.

진정한 낮은울타리가 되기 위해서 재떨이도 하나 준비해야겠다.
베란다에서도 이어진 이야기는 4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친구들의 표정을 보니 마음에 묵혀두었던 재를 다 털었나 보다.
내일 성경공부 전에 환기를 많이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