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열두 살이 된 예수님은 부모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어. 우리 설날이나 추석 명절 연휴에는 며칠 노는 지 아니?”
“삼 일요.”
“더 길게 놀 때도 있어요.”
“맞아. 주말이 겹치면 며칠 더 추가되기도 하지. 그런데 유대인의 유월절은 꼬박 일주일이야.”
“엄청 기네요.”
“지겹겠다.”
“그동안 뭐해요?”
“우와, 기발하다. 그들이 지겹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니네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좀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아는 걸 말해주자면, 하나님이 유월절을 어떻게 지킬지 미리 정해주셨어. 빵을 맛있게 하는 재료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맛없는 빵을 먹으며 자기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의 고통을 겪은 것과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켜 해방시켜준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거지. 그동안 성경 말씀을 읽기도 하고, 예배도 해. 일주일동안 절기를 지키는 것이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복잡한 삶을 사는 우리들 시각이고, 단조롭게 살았던 그 사람들은 지겹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절기를 마치면 가족들이 모두 원래 살던 자기 마을로 돌아가야 해. 예수님이 살던 마을 이름이 뭔지 기억하니?”
“힌트 주세요.”
“첫 자가 ‘나’야.”
“모르겠어요. 힌트 더 주세요.”
“글자 수가 세 개인데 힌트로 두 글자를 달라고 하면 어떡하니?”
“모르는데 어떡해요. 힌트 주세요.”
“좋아, 두 번째 힌트는 ‘사’야.”
“아~~, 알아요. 나사로!!”
“뭐? ㅎㅎㅎ 나사로는 지명이 아니고 사람 이름이야. 그런데 아주 비슷해. ‘ㄹ’로 시작하는 것도 같아.”
“모르겠어요. 그냥 가르쳐주세요.”
“나사렛이야.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 ‘나사렛 예수’라고 해. 나사렛은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살던 동네 이름이야.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성과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이름도 많았어. ‘예수’라는 이름도 하나가 아니라 베들레헴에도 예수가 있고, 예루살렘에도 예수가 있어. 그래서 구별하기 위해 동네 이름을 붙였던거야. 나는 ‘해운대 신욱’이 되는 거지.”
“와~ 우리도 그렇게 부르면 재밌겠다.”
“사건이 뭐냐면 예수님의 부모님이 절기를 마치고 나사렛으로 하룻길을 돌아갔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장남 예수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게 된거야.”
“부모님이 너무 했네요. 어떻게 자기 아들이 따라오지 않는 걸 모를 수가 있어요?”
“그러게 말야. 그런데 사정도 있어. 명절이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니까 복잡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들이 예수님만 있었던 게 아니야. 예수님에겐 어린 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린 아이들을 챙기느라 열두 살이 된 예수님은 알아서 따라오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지. 내가 수도권에서 담임목사를 할 때 일이야. 어느 성도 집을 방문해서 그 집 사정을 듣는데, 고3 딸이 동석했는데 얘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거야. 보통 학생들이 어른들 예배하는데 같이하겠다고 하겠니?”
“절대 아니요.”
“그래서 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말해보라고 하니까 자기가 관심을 받고 싶어서 2박3일간 가출을 했는데도 엄마가 모르더래. 그 얘기를 하면서 울더라고. 엄마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고3이라 워낙 아침 일찍 학교 가고 밤늦게 돌아오니까 당연히 학교에 잘 가는 줄 알았다는거지. 엄마는 한참 진로 고민 중인 언니들과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로 여유가 없었던거고. 걔가 친구집에서 등교를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고. 아무리 부모라도 약점이 있는 사람이고 게다가 아이들 많고, 집안 문제도 많으면 한동안 신경을 못쓸 수도 있어. 예수님의 부모님이 늦게라도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할까?”
“찾으러 가야죠.”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흘 동안 찾았어. 여기서 퀴즈! 하룻길을 갔다고 했는데 왜 돌아오는데는 사흘이나 걸렸을까?”
“여기저기 아들을 찾으면서 오니까요.”
“맞아. 네가 부모의 마음을 잘 아네. 착하다. 이 동네, 저 동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그때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너무 안좋았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