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토요일 밤(한국 시간)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공의 장례식이 있었다.
예전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 비의 결혼식을 비롯 윌리엄 황세손과 케이트 비의 결혼식 등등 몇 차례의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보는 것은 제법 흥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 만화나 동화에서나 나오는 왕자와 결혼식의 결혼을 여러 대의 카메라를 통해 뉴스로 보는 것은 아주 독특한 경험이다.
그런데 장례식은 처음이다.
영국 왕실 장례식은 어떨지, 어떤 장면이 연출될 지 궁금했다.
사망 소식 후 영국인들이 애도하며 기리는 모습을 보며 필립공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필립공은 덴마크와 그리스 왕족이었는데 영국 공주와 결혼하며 국적과 왕위서열과 성까지 포기했다고 한다.
결혼 후 아내가 대관식을 할 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99세까지 70여년을 여왕의 남편으로 살았다.
왕실에 별의 별 일들이 생기는 가운데서도 정말 쉽지 않은 자리, 세상에 혼자이기에 누구에게도 그 애로를 말할 수 없는 자리를 그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냈다.
실로 대단한 사람이다.
장례식은 윈저성에서 운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바로 곁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하는 것까지 봤다.
먼저 윈저성 마당 가득 도열한 근위병 사이로 어떤 음악이 흘렀다.
필립공이 자신의 장례식 음악으로 미리 골라둔 것이라 했다.
이내 운구행렬이 나왔다.
이 때는 오히려 음악이 멈췄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운구하는 사람들의 자갈을 밟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린 건 그 부근인 것 같다.
운구차가 아주 의외였다.
요즘 웬만한 집안의 운구차량으로 멋진 리무진이 사용된다.
그런데 마치 화단 작업용 차량같은 트럭만 서 있었다.
알고 보니 필립공이 오래 전부터 개조한 트럭이며, 자신의 장례식 때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의 장례식 음악과 차량을 준비한 사람이라니, 실로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짧게 필립공의 유품이 카메라에 잡혔다.
자켓과 장갑과 헌팅캡.
한 사나이의 야망이나 업적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소품이 마음을 더 울렸다.
바로 옆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됐다.
코로나로 인해 소수의 왕족만 참석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미사는 짧은 성경말씀과 찬송이 반복됐다.
미사가 끝나고 여왕은 승용차로 이동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걸어서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거기까지 TV를 봤지만 그 장면은 사진으로 담지 않았다.
모든 인생은 각자의 짐을 지고 살고, 그 짐은 신음은 기본이고 눈물이 날 정도로 무겁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쉽게 감당하는 방법이 공감받는 것이고, 그 공감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필립공은 누구의 공감을 받아서도 안되고 아무나 공감할 수도 없는 짐을 끝까지 잘 지고 살았다.
영국 왕실 장례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밤늦게까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타국 방송 시청을 시작했는데, 한 인생으로 인한 울림으로 가득차 리모콘 전원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