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超越)을 향하는 과학(1)

‘초월(超越)’은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 바깥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내게는 수학이나 과학이 초월이다.
대학에서 이과 계열의 전공서적을 보는데 읽을 수도 없고 전혀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내게는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향이라 고등학교 때 수학과 과학 과목시간은 내게 고문이었다.
정말 선생님들의 몽둥이 덕분에 억지로 통과했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 다니는 내내, 아니 지금도 내가 이과로 가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

학부 때 간혹 이과 계열 학생들이 법대 과목을 자유선택과목으로 수강하러 온 적이 있다.
그들은 거의 한자로 도배가 된 법학전공서적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법학도들은 약자로 쓰기도 하고 영어 필기체처럼 날려 쓰기도 하고 또 알아보는데 그들에게는 거의 암호수준이다.
그들에게는 법학이 초월일지도 모른다.

도시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의 삶은 초월일 수 있다.
같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기계공학과 생명공학은 서로에게 초월일 수 있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스마트폰의 운영체계나 반도체의 설계는 대부분에게 초월이다.
이처럼 초월의 경계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누구에게는 전혀 이를 수 없는 수 없는 초월이 누구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수도 있다.

어릴 때 세계여행백과 같은 책을 보면서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브로드웨이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천국보다 멀게 느껴진 곳이었다.
천국은 죽으면 가겠지만 생전에 뉴욕에 가볼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 몇 번이나 가봤다.
브로드웨이를 걷고, 극장에서 뮤지컬도 보고, 타임스퀘어에서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사이에서 사진도 찍었다.
어릴 때의 초월이 이젠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남미나 아프리카는 여전히 초월이다.

사람은 개인이든 인류공동체이든 각각의 초월을 동경하며 초월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너무도 작은 미지의 세계로, 어떤 사람은 너무도 큰 미지의 세계로.
전에는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고, 인식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세계로 나아간다.

그 보편적인 방법이 과학이다.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통해 인간은 초월을 상식으로 만들어간다.
수천 년간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다고 믿었던 초월적 대상인 달에 어느 날 갑자기 발을 딛고 토끼뿐 아니라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는 걸 상식으로 만들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초월을 상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