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장소로 아파트 20평 남짓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80만원을 생각했다.
그 소식을 듣고 주일 예배 장소를 빌려준다는 교회에서는 평일에 교육관까지 빌려주겠다며 그곳에서 비신자들과 성경공부를 하라고 더 폭넓은 제안을 했다.
아직 이런 교회가 있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교회설립 청원을 위해서라도 독립공간은 꼭 필요할 것 같아 사양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관리비까지 생각하면 월 100만원이고, 벽지나 장판이 엉망이면 최소 500만원 이상 들여 새로 하고 들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
그 안에 놓을 집기들을 생각하니 또 500만원 정도.
보증금 1000만원이라고 1000만원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형편에 이걸 굳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돈도 없는데 별도의 장소는 무슨, 한동안 그냥 집에서 모일까?’
‘평범하게 그냥 돈 들여서 상가에다 인테리어해서 시작할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기도했다.
어떤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돈이 생겼는데 내가 생각나서 내게로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받을 돈을 받았으면 그쪽도 필요할텐데 그러지 마시라고 했다.
부부가 이미 상의를 끝냈으니 그냥 받아달라고 한다.
1000만원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액수가 큰 것도 큰 것이지만 내가 보증금으로 생각했던 금액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의 고민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감사히 받고 장소를 얻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부동산에 적당한 장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동산에 의뢰한지 며칠 되지 않아 아파트 한 곳을 보러 갔다.
월세가 싸다길래 부리나케 갔는데, 집이 조금 심하게 말하면 흉가라고 할만큼 낡고 엉망이었다.
“집이 얼마 동안 비어 있었던 건가요?”
“전에 살던 사람이 오늘 오전에 나갔는데요”
집주인이 임대업을 하는 사람이라 월세를 많이 올리지 않는 대신 인테리어는 해주지 않는단다.
손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집이라 월세가 많이 쌌지만 포기했다.
그후 한참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12월에는 새 장소에서 모임을 하고 싶었는데 10월 말에도 연락조차 없으니 계약을 하고서도 보통 두 달의 간격이 있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빨라도 1월로 넘어가게 생겼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아침 답답한 마음에 해변을 걸었다.
원래는 파도소리나 바람소리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하지 않는데, 오늘은 찬양이 듣고 싶어 이어폰을 꼈다.
박종호 찬양을 듣는데 여러 곡 중 한 곡에 마음이 걸렸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그래,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을거야. 내가 너무 답답해서 심지어 기도하지 못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날 위해 기도하고 있을거야”
오전 11시경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좋은 물건이 나왔는데 빨리 보면 좋겠다고 했다.
11시 30분에 만나서 같이 보러 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2018년 내가 남서울평촌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우리 가족이 몇 달을 살던 바로 그 집이었다.
앞이 트여서 멀리 해운대 바다가 보이고, 햇볕이 잘 들고, 깨끗하게 도배가 되어 있는 곳.
그래서 거의 절반 정도 좁은 공간으로 이사오는 우리 식구들에게 위안이 됐던 곳.
사실 구체적으로 기도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공간을 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이라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집을 돌아보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거실과 주방이 붙은 공간에는 가지고 있던 8인용 식탁과 의자를 놓으니 다른 것을 놓을 공간이 없어, TV를 안방에 놓고 아이들과 바짝 붙어 앉아 같이 보던 일,
화장실이 하나 뿐이라 여섯 식구가 아침마다 곤란을 겪었던 일,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따뜻한 햇살을 즐겼던 일,
그 좁은 집에 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했던 일 등.
내가 놀라며 너무 좋다고 하자 부동산 중개인은 바로 주인에게 연락했다.
감사하게도 내 형편을 아는 중개인이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깎는 쪽으로 제안해 주었다.
그러면야 좋겠지만 시세가 있는데 요즘 어느 주인이 그렇게 해줄까?
놀랍게도 주인은 단번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이 정해졌다.
중개인이 바로 가계약금으로 50만원을 보내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언제 나갈 계획이냐고 물으니 12월 2일이란다.
두 달 뒤가 아니라 한 달 뒤인 것이다.
12월에 그곳에서 모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비신자들의 자녀들이 겨울 방학을 하기 전에 장소를 확정하면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언제 쓸까 했더니 집주인이 가까이에 있다며 바로 오겠다고 했다.
12시 30분에 집주인과 마주보며 싸인을 했다.
좋은 집에 저렴하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청명한 하늘이나 바닥까지 비쳐보이는 바다를 보며 ‘니네는 선명해서 좋겠다’라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11시 부동산의 전화로부터 시작해서 2시간만에 계약까지 끝냈다.
그것도
(1) 전망 좋고 햇볕 잘 드는 내가 살던 바로 그 집
(2) 저렴한 가격
(3) 12월에 그곳에서 공부시작
모든 소원이 내가 원했던 것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초조한 내 작은 믿음을 아시고 먼저 가셔서 인도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1000만원을 보내 주신 분께 전화를 드렸다.
이렇게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그러면 보고가 아니라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다.
자주 내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진행되냐고 물어주시는 동기 총무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며 기뻐해 주신다.
노회 시찰장 목사님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여러 의제가 있어 임시노회가 열릴 예정이니 내년 봄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개척청원서를 내라고 한다.
내가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다.
옛날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적인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빵집에 더 맛있는 빵이 넘치고, 편의점엔 각종 생수가 냉장고에 들어있다.
오늘 하루 내게 벌어진 일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과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인 기적이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간 먹이신 그 하나님이 오늘 내게 기적을 베푸셨다.
구약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앞으로도 나와 함께하실 것이다.
어제까지 초조한 고민으로 잠을 설쳤는데
오늘부터 어디에 무엇을 배치하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한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오늘 역시 기적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