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11) – 전 3:9-14

“9절과 10절을 읽어 보시겠어요? 어떤 단어가 보이세요?”
“수고, 노고같은 단어가 보이네요”
“분위기가 어떤가요?”
“수고와 노고가 헛되다는 분위기인데요”
“예, 사람들은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한 수고를 합니다. 조금 먹고 살게 되면 세상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기 위한 수고를 합니다. 그 다음엔 그 파악한 것을 뛰어넘어 보려는 수고를 합니다. 좀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럴 수도 있고, 좀 더 인간답게 살려고 그럴 수도 있고, 인간으로서 호기심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과 공간과 질서를 뛰어넘어 보려는 시도인데요. 이것 역시 인간이 하나님 되려는 시도이죠. 불가능한 일이니 다 헛되다는 겁니다”

“11절에는 왜 그 시도가 헛된 지 이유를 밝힙니다.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과 질서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짐승들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여기에서 ‘영원’은 긴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고 ‘궁극, 본질, 진리, 근본’같은 걸 가리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걸 궁구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분명한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도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깨달을 수 없다는 거죠. 그 질서를 깨달을 수 없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모두 헛수고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잠언 21:1을 찾아 보겠습니다”

잠언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세상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왕이지요”
“예, 왕은 그 나라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수호하고 가난한고 약한 자들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도록 세워진 자이지만 정반대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백성을 압제하며 폭정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아래로 흘러가는 물에 비유한다면 지금 왕은 물이 중력과는 반대로 움직이며 위로 거슬로 올라가려고 하는 겁니다. 강둑 좌우에 있는 제방을 생각해 보세요. 그 가운데 흐르는 물은 거세게 흐르며 가끔씩 튀어 오르기도, 돌을 만나면 소용돌이가 일며 마치 역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결국 제방이 생긴 모양대로 흘러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대로 가겠네요”
“그럼요. 태어나면 죽고, 먹으면 배설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에 자고… 그렇게 사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무신론자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든 누구도 이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12절부터 14절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 보시겠어요?”
“알았다?”
“맞습니다. 위의 내용을 고찰한 솔로몬이 깨달은 것을 각 절별로 한 가지씩 말합니다. 먼저 12절에는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사는 동안 수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수고를 하되 아까 이야기한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어쩌다 선을 행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수고를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혹시 상대방이 불쾌해 하지는 않을까?’라며 신경쓰이는 부분도 생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요. 그게 복되다는 겁니다”

“13절에는 ‘먹고 마시고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선물이라고 하면 평범하지 않은 것, 특히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면 기적적으로 내게만 베풀어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비신자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런 기적이 모든 기독교인에게 베풀어진다면 아마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것을 공부하고 많은 것을 시도해 본 솔로몬은 먹고 마시고 일하는 이 평범한 일이 바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건 이 중 하나라도 잃어 보면 이것들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게 될까요?”
“병에 걸리면 그렇겠죠”
“병에 걸려도 그냥 병이 아니라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할 겁니다. 혼자 섭식을 할 수 없어 호스로 음식물과 물을 넣겠지요. 그제야 ‘내가 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내 입으로 씹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 질 겁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죠. 솔로몬은 우리의 병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엉뚱하고 특별한 선물 바라지 말고 이미 받은 선물이나 감사하며 누리라는 겁니다. 자신의 솔직한 실패담이라고나 할까요”

“14절에는 먼저 하나님의 속성을 언급합니다. 솔로몬이 세상사를 공부해 보니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공부해도 깨달을 수 없고,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시도를 하려고 해도 무너지고 잊혀진다는 겁니다. 인간은 그런데 그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영원성’과 ‘그것에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다’는 ‘완전성’을 말합니다. 이제까지 앞에서 했던 이야기의 작은 결론과도 같은 겁니다. 그러니 사람은 이런 완전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그분을 경외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노년의 솔로몬은 크신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 곧 자신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