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고교 친구의 부친이 암으로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함을 묻고 한동안 이름을 불러 기도했다.
지난 6월 친구 부부가 입원 중인 부친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순간 내 마음에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부부에게 동행해서 부친을 뵙고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 부부는 그렇게 해주면 너무도 고맙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주까지 동행했고, 복음을 전했다.
감사하게도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어르신은 병석에서 내가 전한 복음을 잘 들었고 나를 따라서 “예수님,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어르신이 지난 월요일 밤늦게 돌아가셨다.
친구는 전주에서 고인을 모시고 와서 화요일 오전에 부산에 빈소를 마련했다.
화요일에는 조문객이 많을 것 같아서 수요일 오전에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예상대로 거의 조문객이 없는 시간이어서 친구를 위로하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주무시듯이 아주 편하게 돌아가셨대. 그때 네가 아버지한테 복음을 잘 전해줘서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믿어.”
“그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그때 아버님이 내가 전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분명히 ‘예수님, 도와주세요.’라고 했잖아. 평생을 다른 종교로 사신 분이 몸이 아프다고 갑자기 신앙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아. 병석에 계신 여러분을 만나봤는데, 어떤 분들은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도 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기도 해.”
친구 집안에 기독교인은 오래지 않은 신앙을 가진 친구 부부밖에 없다.
빈소는 비기독교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장례 역시 비기독교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친구 부부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여러 성도들과 함께 조문하긴 했지만 예배는 드리지 못하고 담임목사님이 기도만 했다고 한다.
마침 발인이 오전 7시라서 다른 일정과 겹치지 않아서 내가 참석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혹시 발인 의식이 따로 있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고 했다.
그럼 내가 기도문을 작성해 와서 읽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러면 너무 고맙겠다고 하며 형님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내 앞에서 물었고 형님도 고맙다고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알람을 맞췄는데, 긴장한 탓인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계속 깼다.
알람을 듣고 깼을 때는 정작 바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너무 피곤했다.
얼른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빈소에 도착했다.
유가족은 이른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게도 권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기도문만 잠시 읽는 순서를 가질 것이기에 발인 5분 전에 유가족들에게 잠시 빈소에 모여 앉으라고 했다.
다섯 달 전에 내가 친구와 함께 전주의 병원을 방문한 이야기,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고 고인께서 의외로 잘 받아들이고 고백까지 하셨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 관계로 기도문을 준비한 것이니 비기독교 장례지만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래 기도문을 읽었다.
사람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인간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故OOO 성도님의 장례 마지막 절차들을 앞두고 기도드리오니 우주의 창조자요 주관자인 하나님께서 이 장례의 마지막 날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 피조물 중 가장 으뜸이며 탁월한 존재라고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영웅일지라도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평소에는 사느라 바쁘거나 아직 어려서 삶과 죽음이라는 실체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던 우리 모두가 장례를 통해 우리 삶과 죽음을 헤아려보는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83년 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고인을 이 땅에 보내셨고, 또한 때가 이르러 육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줄 믿습니다.
후손으로서는 당연히 편찮으시지 않고, 돌아가시지 않기를 바라지만 병을 얻고 기력이 쇠하여 죽는 것이 인생임을 되새기게 하옵소서.
풍요롭고 그래도 상식이 통한다는 요즘의 의식으로서는 고인의 생각이나 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만, 일제강점기의 포악함이 가장 심할 때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한국전쟁의 참혹함과 가난 속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고인을 완전히 용납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로서 또한 할아버지로서 유가족의 생명의 뿌리가 되셨고, 군인으로서 평생을 국가에 봉사하셨고, 고인께서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의 짐을 감당해내신 고인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제대로 깨닫고 표현하는 장례의 마지막 날이 되게 하옵소서.
지난 6월 병석에 계신 고인을 뵀을 때, 고인께서 “예수님, 도와주세요”라고 의외의 고백을 하신 것은 암이라는 못된 병과 온몸에 찾아든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시고 진정한 신에 대한 갈망의 호소를 하신 줄로 믿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성경에 약속하신 하나님이 이미 고인의 영혼을 행복한 천국으로 인도하신 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귀하게 보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고인의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아주옵소서.
지난 사흘간 장례를 치르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유가족을 위로하시고 장례의 마지막 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행보인 발인의 과정을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고인의 육신을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화장의 절차를 유가족이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호국원에 안치하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옵소서.
좋은 일기를 허락하여 주셔서 유가족이 슬픔과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간혹 하늘을 쳐다볼 때 저 천국에 고인께서 계시다는 사실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게 하옵소서.
장례의 분주함이 다 사라진 후 일상으로 돌아온 상주와 유가족에게 더 큰 슬픔과 허전함이 찾아올 때, 건강하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유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옵는 것은 유가족에게도 고인처럼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을 주셔서 천국에서 재회하는 기쁨을 허락하옵소서.
햇빛에 사라지는 이슬같고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같은 인생을 사랑하시고 아들 예수님을 구원자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약속의 이름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발인 직전 친구 부부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친구는 내게 기도문을 적은 것이냐고 물었다.
어제 조문 후 밤에 작성한 것이라고 했다.
친구에게 톡으로 내용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러면 더 고맙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