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복음(25)

“애통은 소리를 내서 울 정도로 슬프다는 거야. 니네는 언제 소리를 내서 우니?”
“억울할 때요.”
“그럼 니네들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 말해 볼래?”
“엄마아빠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이 억울해요.”
“오해 받는 것이 억울해요.”
“둥지에 온 게 억울해요.”
“폭행당한 게 억울해요.”
“그런 게 억울했구나. 그래서 눈물이 나왔어?”
“그런데 이제는 안 울어요.”
“왜?”
“울어 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아프다.”
“왜요?”
“울지 않는다는 건 포기하고 마음을 닫았다는 뜻이잖아. 니네들은 청소년인데 벌써 그러면 안되지. 감정이 차오르고 눈물이 나올려고 하면 울어. 그게 마음 건강에도 좋대.”
“약해지는 것 같아서 싫어요.”
“눈물을 흘리는 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는 거야.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애통은 억울해서 우는 게 아니야. 하나님 앞에 죄인된 내가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울고, 또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악으로 물들고 환경과 질서가 파괴되는 것이 안타까와서 우는 거지. 대신 울기만 하고 우울증 걸리라는 건 아니야.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는 거지.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는데 환경은 파괴되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걸 애통해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런데 부산은 기독교인 비율이 너무 낮아서 기도할 사람이 없어.”
“기독교인 비율이 어떻게 되는데요?”
“내가 20년 넘게 살았던 수도권에는 기독교인 비율이 20%가 넘거든. 그런데 부산은 5% 정도 되는 것 같아. 통계상으로는 10% 정도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이단도 있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하는 거니까.”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부산의 기독교인이 그것밖에 안돼요? 충격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더 필요해.”
“애통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는 게 인상적이네요.”
“세상은 애통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세상적 기준으로는 애통이 복이 될 수 없어. 하지만 예수님이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아주시고 오히려 반대로 애통하는 것이 복이 있는 것이라고 제대로 말씀해 주셨으니 산상보훈이지.”

“온유가 뭔지 아니?”
“몰라요.”
“온유는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걸 말하는 거야. 니네는 언제 온유가 깨지는 것 같니?”
“누가 내 욕을 할 때요.”
“남이 나를 무시할 때요.”
“예의가 없을 때요.”
“나한테 억지부릴 때요.”
“말이 달라질 때요.”
“주로 누가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할 때 온유가 깨지는 구나. 그런데 만약 니네들이 너무 화가 나고 힘이 더 세면 어떻게 할까?”
“패주겠지요.”
“그러면 온유한 자가 되지 못해. 온유는 자기가 화가 나고 힘이 세서 때려줄 수 있어도 즉각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태도야. 그런데 이게 너무 어렵지. 하나님께서 언제 심판해 주실 줄 알고? 이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야.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어. ‘기업’이 뭔지 아니?”
“기업은행이요?”
“ㅎㅎㅎ 여기서 ‘기업’은 회사를 말하는 기업이 아니라 유산을 말해. 유산은 누가 받는 거지?”
“아들이오.”
“그래, 유산을 받는다는 건 재산을 가진 사람의 자녀라는 의미야. 그럼 천국의 유산을 누가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요.”
“맞아.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온유할 수 있고,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니까 천국을 유산으로 받게 된다는 거야.”
“진짜 천국을 유산으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