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나온 아브라함이 간 곳은 네게브입니다. 지도에서 네게브를 찾아 보시겠어요? 지도에 이집트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집트는 이 부근에 있습니다”
나는 입체모형지도의 우측 하단부를 가리켰다.
함께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보던 분들이 내 손과 가까운 곳에서 네게브를 찾았다.
“여기 있네요”
“잘 찾으셨습니다. 네게브는 히브리어로 ‘광야’라는 뜻입니다. 강수량이 너무 적어 사람이 거의 살 수 없는 지역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기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남단이거든요. 그리고 이 네게브 지역을 지나 원래 지내던 ‘벧엘’ 부근으로 왔습니다. 어떤 경로로 왔을까요?”
앞에서 아브라함의 이동경로로 설명했던 산지의 빨간 선을 기억하고 그 선 위에 있는 벧엘을 잘 찾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이스라엘의 지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감사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올 때 조카인 ‘롯’이란 사람이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재산이 많아지면서 충돌이 생겼습니다.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두 사람의 소유 가축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거주민도 있는데 말이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브라함이 조카인 롯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따로 살자고 하면서 선택권을 조카에게 줬습니다. 네가 저쪽을 택하면 나는 이쪽으로 가고, 네가 이쪽을 택하면 나는 저쪽으로 가겠다. 삼촌이 이런 제안을 하면 조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삼촌이 먼저 택하시도록 해야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브라함과 조카가 어디 있다고 했지요?”
“벧엘요”
“예, 벧엘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지도에서 벧엘의 위치를 다시 가리켰다.
입체모형지도라 한눈에 봐도 벧엘이 높은 지역이라 주변을 살피기에 좋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조카 롯이 주위를 둘러 보고 냉큼 좋은 위치를 택했습니다. 벧엘에서 위쪽에 낮고 좁은 지역이 보이시죠? 여기가 요단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지대가 낮고 농사짓기에도 좋은 곳이지요. 창세기 13장 10절을 읽어 주시겠어요?”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세기 13:10)
“롯이 벧엘에서 소알까지 바라봤다고 했습니다. 소알이 어디 있냐면…”
사해 아래쪽 소알을 가리켰다.
“벧엘에서 엄청 멀리까지 봤지요?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이 산지에서 동쪽으로는 요단 건너 요르단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보입니다. 제가 별로 시력이 좋지 않은데도 말이지요. 당시에는 공기오염도 없고 시력도 좋았을테니 얼마나 잘 볼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자기가 살 땅을 고르는 일이었으니 더 신경을 써서 봤겠지요”
“그런데 여기에 묘한 표현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아세요?”
“잘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불을 내려 심판하시는 바람에 세상에서 사라진 도시입니다. 그 도시가 어디 있었냐면 바로 사해 남쪽 끝부분입니다. 다른 입체지도를 하나 보여드릴께요”
이스라엘 성경지리답사를 갔을 때 샀던 또 다른 입체지도를 가져왔다.
영어로 적혀있지만 소돔의 흔적이 표시된 지도이다.
“영어로 적혀있지만 쉽습니다. 여기 사해 남쪽에 소알이 보이시죠? Zoar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 동쪽에 보시면 Mt.Sodom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소돔이 이 부근이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은 사해이고 광야 비슷한 곳인데 그 때는 에덴동산처럼 멋진 곳이었던 모양입니다. 조카 롯은 냉큼 동쪽인 요단 지역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싹수가 없죠?”
“그러네요”
“삼촌이 먼저 택하라고 했더라도 조카라면 ‘삼촌이 먼저 택하십시오’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롯은 동쪽으로 옮겨간 후 가만히 있지 않고 더 좋아 보이는 남쪽으로 내려가 멸망의 도시인 소돔까지 갔다고 했습니다”
“조카 롯을 떠나 보낸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안좋았을 것 같아요”
“좀 괘씸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아브라함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랬을 겁니다. 아마도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배신당한 느낌도 있고 그랬을 겁니다. 아브라함이 속상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지도 모르지요.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4절부터 17절까지 읽어 주세요”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세기 13:14-17)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속을 아시고, 아브라함을 위로하십니다. 너 있는 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그러면서 ‘너는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하셨습니다. 롯은 소돔에 가서 가만히 정착하고 살지만 아브라함은 계속 가나안 땅을 왔다갔다 합니다. 18절에 아브라함이 ‘헤브론’이란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도에서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여기 있네요”
“예, 아브라함은 빨간 선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고 말씀드렸지요. 잘 찾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을 거점으로 삼고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 빨간 선을 따라 왔다갔다하며 살게 됐습니다. 그 땅을 두루 다니게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