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3)창26:1-11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 당한 일이 기근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친족과 고향을 떠나 가나안까지 왔는데 오히려 고난을 당한 거죠. 이게 기독교 신앙의 힘든 부분입니다. 어려운 결심을 하고 나름 손해를 보는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는데 오히려 당하지 않아도 되는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다들 표정이 무척 진지해졌다.
아니, 불편한 표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굳이 기독교를?’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말씀하시고는 하나님이 뒤통수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가?’를 시험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더니 돈을 더 많이 벌고, 자식은 공부를 잘하게 되고, 병도 다 나았다’고 하면 누가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아마 교회 앞에는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시는데 나는 관계가 아닌 업그레이드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게 되잖아요. 예전에 연애할 때 남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지 않으셨어요?”
“그랬죠.”
“확인해야죠. 그래야 결혼을 결심할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조건이 아닌 존재 자체로 관계를 맺고 싶으신 겁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하세요?”
“음…”
“고향으로 돌아갔나요?”
“아니요.”
“그럼 어디로 갔지요? 거기 가만히 있으면 식량이 없어 굶어 죽게 되는데요.”
이럴 때 기존 신자들이 먼저 냉큼 대답해 버리면 재미가 없다.
다행히 그분들이 함께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 분이 브엘세바 위쪽에 원을 그리며 “여기 어디에 있었을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분명히 북쪽은 아니었고 남쪽에서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었던 걸 기억한 것이다.
난 그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거기보다 더 남쪽이요.”
“이집트?”
“예, 이집트로 갔습니다. 아들 이삭은 자라면서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종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닥쳤을 때에도 이집트에는 곡식이 풍부하더라는. 그러면 흉년이 닥칠 때 족장인 이삭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쉬운 선택은 무엇일까요?”
“이집트로 가는 것.”
“예, 맞습니다. 종들도 알고 있는 상식이니 여러 사람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족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되겠지요. 원래 브엘세바 근처에 살던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려면 직선으로 쭉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습니다. 거긴 네게브 사막이거든요. 열흘이 걸리는 먼 길이니 그래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고, 물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해안길로 가야 했습니다. 그 해안길로 가려면 오히려 북서쪽에 있는 블레셋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인 그랄 지역으로 가서 다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랄에 있을 때 하나님이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지역에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너에게 복을 주겠다시며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한 것과 같은 약속(창26:4)을 하셨습니다. 이삭은 그 약속만 믿고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고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합니다. 다행히 그 땅에는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거기서 잘 먹고 잘 살았을까요?”
“아니요.”
“어떻게 아세요?”
“왠지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이삭이 아내인 리브가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남매지간으로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예, 이 장면 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 때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사라를 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으로 생각할 때 요즘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볼 수 있으니까 사라의 미모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지금 이삭이 있는 바로 그랄에서 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사라가 이미 폐경했고 90세의 나이였지만 하나님이 이삭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회춘시키셔서 사라의 미모에 반한 팔레스타인의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 다 하나님이 막으시고 오히려 아브라함을 높이는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신 거죠.”

“데자뷰처럼 보이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8절에 보면 이삭이 그랄에 오래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동안 사람들이 리브가의 미모에 반해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왕에게 후궁으로 추천하거나, 왕이 궁으로 데려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 리브가의 미모가 탁월한 것일까요?”
“아닌 모양인데요.”
“오랜 세월 아무런 일이 없었으니 객관적으로 아닌 게 증명된 거죠. 그런데 이삭은 ‘당신이 아리따우므로 나를 죽일 것 같소’라고 염려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눈에만 엄청 이뻐보였던 모양입니다. 리브가는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요?”
“아니요.”
“어떻게 아세요?”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ㅎㅎㅎ 맞습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이 아내인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창으로 내다본 겁니다.”
“왕이 남의 집안을 왜 쳐다 봅니까?”
“그러게요. 요즘엔 변태나 하는 짓을 왕이 했네요. 여기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보면 왕궁이 어디에 세워져 있지요?”
“높은 곳에요.”
“예, 성 한 가운데 높이 세워져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의 성읍들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로 언덕에 세워졌는데 그중에서도 왕궁은 가장 높은 곳에 세워졌습니다. 지금부터 4천 년 전이니 성읍이 북경의 자금성처럼 큰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왕이 궁의 망대에 오르면 성 안의 모든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저 집 뭐하나?’ 관음증으로 일부러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닌 나그네였기 때문에 성읍의 안전을 생각하는 왕의 입장에서는 ‘혹시 스파이 짓을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보다 주목했을 수도 있지요.”
“배경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왕이 이삭을 불렀습니다. 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느냐고 따졌습니다. 자기는 절대 아니고 혹시 백성 중에 버젓이 남편이 있는 여인과 동침할 뻔하지 않았냐며 질책했습니다. 이삭은 자기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자기 아내가 너무 이뻐서 자기가 죽임을 당할까봐 그랬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아비멜렉은 그랄 성읍에 나그네인 이삭과 리브가는 부부지간이니 둘 다 절대 건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