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의 청소년들은 거의 한 달에 한두 명이 새롭게 들어오고, 소년법원의 1호 처분 6개월을 채운 한두 명이 퇴소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사이 다른 사건과 또 연루되어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재판을 받기 위해 분류심사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6개월이다.
기본적으로 이 아이들은 비행청소년으로서 소년법원의 1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다.
그러나 내가 매주 밤 8시쯤 만난 아이들은 그저 장난기 많은 10대 청소년일 뿐이다.
그래도 가끔 ‘이 아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너는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니?”라고 묻지 않고, 궁금한 척도 하지 않는다.
센터장 임윤택 목사님에게도 물은 적이 없다.
적어도 둥지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 없이 어른과 청소년으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일절 자신이나 같이 생활하는 아이들의 일탈의 내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평소 서로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고 내 앞에서 툴툴거리면서도 그것만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적어도 성경을 가르쳐주는 내게는 일탈의 내용을 알리기 싫어서인지, 최소한의 부끄러움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모임을 마치고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임 목사님과 대화하다가 그런 반응이 나온 이유를 임 목사님이 설명하며 최소한의 가정환경에 대해 들은 적은 있다.
마가복음 2:1-12를 돌아가며 읽었다.
가끔 더듬거리지 않고 성경을 줄줄 읽어내려가는 아이도 있다.
놀라워서 임 목사님에게 물어보면 부모님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가정환경도 좋은 아이이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임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소년 문제는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대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집 막내도 중2 때 한참 방황을 했었다.
나중에 “그때 왜 그랬냐?”라고 물어보니,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더 늦으면 못 할 것 같아서요.”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다.
다행히 우리 막내는 2년 만에 그쳤지만, 그냥 한번 해보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예수님이 어느 집에 계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왔어. 문 앞까지 가득차서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들 것에 메고 왔어.”
“중풍병자가 뭐예요?”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몸 반쪽을 못 쓰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병이야. 길거리에서 열심히 걷기 운동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도 있어.”
“본 것 같아요.”
“이 사람은 혼자 걷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서 친구들 네 명이 사방에서 들 것에 들고 왔어. 친구들이 왜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까?”
“치료해 주려고요.”
“예수님이 의사도 아닌데.”
“예수님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맞아, 예수님이 내 친구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어. 사람이 어떤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대로 행동하게 돼. 그런데 모든 믿음이 다 좋은 게 아니야. 보이스피싱같이 나쁜 걸 믿으면 큰 손해를 보게 돼. 그래서 바른 믿음을 가져야 되는 거야. 니네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내가 성경을 가르쳐 주는 거야. 내 맘 알지?”
“예.”
“친구들이 수고스럽게 데리고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가 없었어. 이때 니네들 같으면 어떻게 할래?”
“매직 패스~~”
“그게 뭐냐?”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타려고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릴 때 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는 거요.”
“아~ 돈 내고 따로 티켓을 사는 것 말이지?”
“예.”
“그런 게 있었으면 이 친구들이 그렇게 했겠지. 그런데 이때는 매직 패스도 없어. 그래서 이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위에서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어.”
“지붕을 뜯을 수 있어요?”
“이때 이스라엘은 지금처럼 콘크리트로 집을 짓지 않았어. 콘크리트로 지었으면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다쳤겠지. 친구 구하려다가 더 큰 사고를 냈을 거야. 당시에 벽은 돌과 흙으로 쌓고 지붕은 나무로 지지대를 만들고 대추야자 잎을 몇 겹씩 쌓아서 지붕을 쉽게 위로 걷어낼 수 있었다고 해.”
“남의 집 지붕을 뜯으면 안되는 것 아녜요?”
“안되지.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고자 하는지 봤으면 좋겠어. 지붕이 열리고 한 사람이 누워서 들 것에 실려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다 그쪽을 봤을 거야. 예수님도 말씀하시는 걸 멈추셨겠지. 예수님이 모든 환자를 고쳐주신 건 아니거든. 그런데 예수님이 왜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을까?”
“중풍병자가 불쌍해서요.”
“중풍병자가 고쳐달라고 해서요.”
“우리가 읽은 성경에 그 이유가 있어. 5절에서 찾아볼래?”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래,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신 직접적인 이유는 중풍병자가 불쌍해서도 아니고 중풍병자가 고쳐달라고 해서도 아니야. 중풍병자를 들 것에 메고 데리고 오고 지붕을 뜯어서 예수님 앞에 달아내린 친구들의 믿음 때문이라는 거야. 잘 생각해봐. 예수님이 고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친구를 메고 거기까지 갔겠니?”
“아니오.”
“자기들이 다 변상해줘야 하는데 지붕을 뜯었을까?”
“아니오.”
“예수님이 자기 친구를 고쳐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친구를 예수님 앞에 보이는 일을 위해 자기들이 얼마든지 수고하고, 얼마든지 변상해줄 수 있다고 각오했기 때문이야.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지 않니?”
“부러워요.”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만 하지 말고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주면 어떨까? 너희가 중풍병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희가 먼저 누군가에게 지붕을 뜯어서까지 도와주려는 친구가 되는 거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너는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그런 친구가 되길 바란다면 그게 도둑놈 심보야. 남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할 수도 있어야지. 남이 먼저 해주면 그때 나도 해주겠다고 하면 영원히 그런 친구는 없어.”
“노력해 볼게요.”
“그래, 쉽지 않겠지만 노력이라도 해봐.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좀 이상한 말씀을 하셨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은 중풍병이 죄 때문에 왔다는 거지. 그런데 예수님이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거야. 죄는 누가 용서해 줄 수 있지? 우리가 회개기도를 누구에게 하지?”
“하나님이요.”
“맞아, 하나님만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어. 이 말은 예수님이 바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야.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놀랐다고 해. 오늘 꼭 기억해야 하는 건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이제 소감 한 마디씩 말해 볼래?”
“중풍병에 대해 알게 됐어요.”
“친구에게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풍병자의 친구가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친구가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수님의 치료가 어이없어요.”
“예수님이 치료하시는 걸 보니 낭만닥터 같아요.”
마지막은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밝힌 아이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