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그룹2] “저는 여기 오면 안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여기 오면 안될 것 같습니다.”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60대 여성 자매 두 명 중 언니가 말했다.
따뜻한 군고구마를 맛있게 잘 드시고서는 싸늘한 이야기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

“왜요?”
“몇 년 전에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일도 못하고 해서 뭐 물어보는 집에 가서 물어봤는데…”
점집에 가신 것이었다.
목사 앞에서 점집에 갔다고 하기가 미안해서 ‘뭐 물어보는 집’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아챘다.
“그분이 쌀 서 되를 절에 바쳐서 여러 사람들이 먹게 하고, 새벽마다 집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조상님께 빌면 남편이 괜찮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돈을 많이 내서 굿을 하라고 하면 안했을 건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쌀 서 되를 내라는 거니까 했습니다. 한 번에 쌀 서 되는 너무 무거워서 한 되씩 사흘 동안 가서 내고 108배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조상님께 빌었습니다.”
“정성을 다하셨네요. 그래서 남편분 건강은 잘 회복되셨습니까?”
“예, 신기하게도 거의 1년만에 다 나아서 이제는 다시 일도 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잘되었네요.”
“그런데 여기 와서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아침마다 비는 걸 계속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 이야기 들었는데 그 다음날 조상님께 빌려니까 아무래도 뭔가 안맞는 것 같아서요.”

“언니분이 의리가 있으시네요. 조상님께 기도해서 남편의 병이 나았으니까 계속 아침마다 기도를 하시는 거잖아요?”
“예.”
“그러면 마음이 어떠세요?”
“남편의 병이 나았으니까 계속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 계속하세요.”
“예? 그래도 되나요?”
“그렇게 하는 것이 언니분 마음이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셔야지요.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면 마음이 어떠세요?”
“새로운 걸 알게 되니까 좋습니다.”
“그러니까 성경공부도 계속 하시면 되지요?”
“그래도 되나요?”
“교회 다니고 세례도 받고 예수님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되지요. 하지만 언니분은 이제 성경의 내용이 뭔지, 예수님이 누군지 조금씩 배우고 있잖습니까?”
“지난 번에 배운 것 ‘요한계시록’이 그냥 성경 이름이 아니고 ‘요한이 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말씀이란 의미’라고 기억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벌써부터 이건 하지 말고, 저것만 하라고 하는 건 복음이 아닙니다. 일단 성경의 내용을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제대로 듣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맞네요.”
“일단 조상님과의 의리를 지키시는 게 마음이 편하시다니 그렇게 하시고, 저와 성경공부도 지금처럼 잘 하시면 됩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마음이 좀 편합니다.”
“제가 2020년 12월 말에 부산에 이사와서 아파트 같은 통로에 있는 집집마다 쓰레기봉투를 선물로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어떤 집에서 새로 이사오신 걸 축하한다며 2021년 달력을 답례선물로 줬는데 절에서 만든 달력인 겁니다. 게다가 그 안에 부적 비슷하게 먹으로 휘갈긴 것 같은 글씨가 적힌 빨간 종이도 있고요.”
“예? 진짜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달력은 1년 지나고 버렸고, 빨간 종이는 기념으로 잘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다만 그분은 마음을 표현한 거니까 혹시라도 ‘잘 갖고 계십니까?’ 물어볼까봐 예의상 갖고 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저도 마음 편하게 계속 성경공부하러 오겠습니다.”
“예, 마음 편하게 오십시오.”

이 두 분은 2022년 11월부터 격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독교 이단에서 공부했던 경험을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진지하게 본인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6개월만에 처음으로 조상신을 숭배하면서 예수님과 성경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걸 털어놓았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
일종의 영적인 ‘명현현상’이라고나 할까.
비신자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꾸준히 복음을 들려주고 그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 그분에게 최선이라 여겼다.
오늘도 그분들을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