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가족이 엄청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제까지는 외삼촌과 사촌형제들, 형 에서와 그의 부하들과의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집안 문제였고, 사회적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야곱에게 닥친 일은 이전까지의 문제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야곱이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야곱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덤벼들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럴 때 야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해야 되겠네요.”
“ㅎㅎ 그건 너무 뻔한 기독교적 정답인데요. 교회 답안지가 너무 많이 유출되었네요.” “맞잖아요?”
“맞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으니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인생에서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도할 생각도 나지 않고, 기도할 시간이나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일을 당해 본 적 없으세요?”
“당연히 있지요. 그땐 정신 없었지요.”
“맞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 기도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걱정이 앞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목사님도 그러세요?”
“목사도 사람인데요.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맥이 풀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바로 야곱이 그런 상태였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배하고 기도해야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20년 전에 야곱이 집을 떠나 노숙할 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사건을 기억하세요?”
“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이 ‘벧엘’이란 곳이거든요. 야곱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피아노 학원 이름…”
“야곱이 자기가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돌아오면 자기가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사히 돌아오고 외삼촌이나 형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되니까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연로한 자기 아버지 이삭을 보러 브엘세바까지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고 살기 좋은 곳에서 냉큼 땅을 사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원래 네가 약속했던대로 벧엘로 가서 예배를 드려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위기 중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주신 거죠.”
“그런데, 예배할 분위기가 아닌 것 아닌 가요?”
“맞습니다. 그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분위기로만 봤을 때 야곱은 지금 전쟁을 해야할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디로 가서 예배하라’고 너무 구체적으로 요구하셨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라는대로 해야죠.”
“맞습니다. 어차피 지역 주민들과 전쟁을 해봐야 야곱은 승산이 없습니다. 에서의 부하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고, 게다가 적대감까지 가지고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살 길은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영감 같은 걸 주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감, 육감, 직감이라고 하겠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습니다. 그 인도하심의 내용이 야곱의 경우처럼 당시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쁘게 처리할 일이 많은데 교회당에 가서 기도나 하고 있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만 생기면 무조건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