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0km 달리기

작년 봄부터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
무작정 달리기를 하다가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얼굴이 시커멓게 타기도 했다.
SNS를 통해 달리기를 잘하는 법에 대해 공부를 했다.
러닝용 운동화를 사고, 자세를 교정하기도 했다.
꼬박꼬박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송정 죽도공원과 구덕포를 왕복하는 4km를 달렸는데, 나중엔 집-청사포-구덕포-죽도공원을 왕복하는 9km를 달렸다.
사실 달렸다고만 볼 수도 없다.
치노와 함께했기 때문에 치노가 변을 보느라 멈추면 나도 멈추고 변을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치노가 지쳐서 걷기를 거부하면 치노를 안고 걷기도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제대로 시간을 측정한 적이 없다.
만보계와 비슷한 앱으로 보통 1시간 넘게 걸렸다.

제주에는 나 혼자 갔기 때문에 기록을 한번 재보기로 했다.
중국 자본으로 지어졌다는 신화월드 블록을 눈대중으로 보니 10km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직접 달려보니 중산간의 오르막이 제법 심했지만, 오르막보다 더 힘든 건 출근하는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이었다.

출발점으로 돌아와 기록을 보니 첫날은 1시간 1분 2초, 속도는 km당 6분 6초였다.
경로가 파악된 둘째날은 첫날보다는 자신있게 뛰어서 그런지 55분 5초, 속도는 km당 5분 28초였다.
보통 10km 달리기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1시간 안으로 들어오기를 목표로 한다는데 내가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날 밤은 숙소를 송악산 부근 해변으로 옮겼다.
그곳은 평지라서 마지막 달리기에서 더 좋은 기록이 나오길 기대했다.

마지막 날 아침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이틀 연속 10km를 달려서 그런지 오른쪽 햄스트링이 뻐근했다.
또 하나는 바람이었다.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세서 가슴을 미는 것 같았고, 호흡을 방해했다.
그나마 일출의 장관을 보며 달리는 것이 위로가 됐다.
일단 달렸다.

셋째날 달리기 기록 [화면캡처 강신욱]

시간은 53분 4초였고, 속도는 km당 5분 15초였다.
중산간 도로를 달린 것에 비하면 만족스런 기록은 아니었지만 햄스트링 통증을 안고 뛴 것을 고려한다면 나름 괜찮게 여겨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길은 없고, 바람과 햇빛이 없는 길도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좀 더 빠르게 달리려면 내가 하루라더 더 달리는 연습을 하고, 더 한 발짝 더 내딛고, 가쁜 호흡을 더 참는 수밖에 없다.

아, 가련한 인생이여!!
역경을 감당하며 살아내는 위대한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