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위로

코로나 후유증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2022년 3월부터 가까운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받았다.
레슨코치가 두 명이었는데 나는 나이가 70이라서 세게 받아쳐주지 못한다는 분을 일부러 택했다.
나도 세게 칠 실력도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저 최소한의 야외활동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나는 소장이라는 그분을 선생님으로 깍듯하게 대했다.
테니스장에 들어가면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마치고 나서도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명절과 스승의날에는 선물을 따로 준비해서 드렸다.
대화중에 비기독교인인 것을 알고 졸저인 ‘대화로 푸는 성경’을 선물하기도 했다.
물론 그분도 내가 목사인 것을 안다.

한번은 레슨 전에 내가 미리 와서 공을 모으는 모습을 보고 “혹시 뭐하시는 분입니까?”라고 물었다.
“왜 그러시는가요?”
“그냥요, 뭔가 좀 다른 것 같아서요.”
“목사입니다.”
“역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천국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장님 덕분에 테니스장의 몇몇은 내가 테니스장에 들어서면 “목사님 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12월 31일부로 테니스장에서 더이상 레슨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장님의 생계가 막막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소장님은 12월 31일은 좀 일찍 퇴근해서 송정 해수욕장 부근에서 치킨집을 하는 아들네를 도와야 하니 레슨을 30일에 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나는 30일에 마지막 레슨을 받고 10만원을 넣은 봉투를 드리며 “그동안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소장님은 봉투를 받아들고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31일 저녁 일부러 정체를 뚫고 소장님이 일하신다는 치킨집에 갔다.
사실 나는 치킨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나 소장님의 가오를 위해 양념 한 마리, 후라이드 한 마리를 미리 주문하고 송정까지 운전해서 갔다.
골목 안 치킨집은 매장이 아주 작아 배달로만 운영하는 규모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장님이 “목사님~”하며 반가이 맞아주셨다.
이어서 “여기가 제 아내이고, 여기가 처형입니다.”라고 소개해주셔서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두분이 마치 원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너무 반가이 인사해주셔서 좀 얼떨떨했다.

계산을 하려고 했는데, 소장님이 “목사님, 그동안 선물도 많이 주시고, 책도 주시고, 어제는 봉투도 주셨는데 저는 아무 것도 드린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오신다고 했을 때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선물로 받아주십시오.”라고 하셨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목사님 마음도 이해합니다만 제 마음도 받아주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소장님과 부인은 바깥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했다.

치킨 두 마리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먹었다.
치킨의 기름기를 싫어하지만 소장님의 마음이라 생각하니 맛있게 느껴졌다.
내란과 사고로 너무도 무겁게 보낼 수 밖에 없던 제야에 위로가 되었다.
도움이 되고 싶어 번거로운 길을 간 것인데, 도리어 내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