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비신자의 만남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이번 주부터 비신자와의 만남을 재개했다.
두 달여 만의 만남이다.
지난 주간 약속을 잡고 원활한 만남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 중 내 뇌리 한 켠으로 기도의 방향과는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
‘그동안 공부를 못했으니 성경책을 펴고 진도 나갑시다.’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만남을 수단으로 만들지 말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관계를 도구로 만들지 말자.
굳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요즘같이 파편화되는 사회에서
만남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관계 자체가 얼마나 시간을 들여 형성된 일인가.
예수님도 만남 자체를 위해 공을 들이시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낮은울타리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도 시간의 공백 때문인지 좀 어색한 듯하다.
소파로 안내하고, 간식과 음료를 테이블 위에 놓고 내가 이렇게 입을 뗐다.
“오늘은 두 달여 만에 만났으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방문객은 내가 그동안 나가지 못했던 진도를 열심히 나가자고 할 줄로 예상했었나 보다.
의외의 말에 세월의 간격 때문에 조금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고 대신 미소로 채워졌다.
그분은 그분의 삶을 나눴고, 나도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말했다.
목사와 비신자와의 만남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되었다.

낮은울타리가 단순히 비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곳, 비신자도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곳, 답답한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시원한 곳이 되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성과를 위한 만남을 추구하지 않고 헤아려진 주님의 마음에 순종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