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복음(12)

내가 간식을 사서 둥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7시 40분 전후이다.
그때는 아이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다.
식사한 것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하고 오면 8시 5분 전이 된다.
아이들이 평소 활동수업을 하는 곳에서 모임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 앉아 있으면 한 명씩 줄지어 들어오면서 나름 반갑게 인사를 한다.
“목사님~~~”
어떤 아이는 호칭을 길게 빼고,
“목사님, 보고 싶었어요.”
“목사님, 기다렸어요.”
어떤 아이들은 진심인지 포장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오늘은 간식 없어요?”
어떤 아이는 금방 저녁을 먹었는데도 입이 심심한 모양이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주로 서열에서 한참 밀리는 중학생 막내가 그렇다.

마태복음 3장 1절부터 17절까지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 명이 한 절씩 읽었다.
중학생 세 명, 고등학생 네 명인데 더듬거리지 않고 읽는 아이는 고등학생 한 명 뿐이었다.
어떤 아이는 실수로 조금 더듬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난독증 수준으로 더듬거리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것으로 놀리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평소 아이들의 산만함이나 서로를 향해 핀잔을 주며 툭탁거리는 것에 비하면 참을성이 대단한 것이다.
모두가 조용히 그 아이가 잘 끝내기를 기다린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모르는 단어 있니?”
“유대광야.”
“석청.”
“요단강.”
“바리새인하고 사두개인요.”
“회개”
“세례”
“성령과 불”
“이제 됐어?”
“예.”
기독교인에게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인데 이 아이들에게는 모르는 단어들이다.
아마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에 다닌지 몇 년 되지 않는 어른이 설교 시간에 나오는 단어들을 모두 알아듣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냥 아는 체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유대광야는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사막같은 지형 이름이야, 석청은 꿀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요단강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남부로 흐르는 강 이름이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 당시에 있던 종교세력들의 이름이고. 회개는 한자어인데 ‘뉘우칠 회’와 ‘고칠 개’를 써. 뉘우치고 언행을 고친다는 의미야. 세례도 한자어인데 ‘씻을 세’, ‘예도 예’자를 써서 ‘씻는 예식’이란 의미야. ‘성령과 불’은 비유법인데, 국어 시간에 비유법 배웠지?”
“비유는 알아요.”
“직유법과 은유법, 들어본 적 없어? 국어 시간에 자주 나오는데.”
“들어본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데 ‘무엇무엇처럼’이나 ‘무엇무엇 같다’라고 하면 직유법, ‘A는 B이다’처럼 ‘처럼’이나 ‘같이’가 없으면 은유법이야. 그럼 ‘성령과 불’은 직유법일까 은유법일까?”
“은유법이오.”
“맞았어. 이거 꼭 기억해라. 국어 시험에 나온다.”
“진짜요?”
“내가 문제 낼테니 무슨 법인지 맞춰봐. A는 B이다.”
“은유법.”
“맞았어. 그럼 뭐뭐처럼, 뭐뭐같이?”
“직유법.”
“오케이. 잘하네. 근데 불의 특징이 뭘까?”
“태워요.”
“그렇지. 하나님인 성령이 죄를 태운다는 의미야. 또 다른 불의 특징은?”
“뜨거워요.”
“맞아. 우리나라 발전소는 물을 뜨겁게 해서 터어빈이란 기계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거든. 뜨겁다는 건 에너지가 된다는 거지. 하나님인 성령이 신자들에게 에너지가 되어주신다는 거야. 또 불의 특징은?”
“밤에 밝아요.”
“그래, 불은 캄캄할 때 밝히는 역할을 하지. 하나님인 성령이 우리의 영혼이 어둡기 때문에 밝은 빛이 되어주신다는 거야.”
“복잡하네요.”
“기억하지 말고 오늘은 그냥 들어만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