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던 장소가 어디라고?”
“이스라엘.”
이제 아이들에게 ‘이스라엘’이 입에 익은 모양이다.
장소 질문을 하면 누군가는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렇지. 여기 배경이 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라서 전부 이스라엘이야. 세례를 하려면 뭐가 필요하지?”
“물.”
“그러면 여기가 어딜까?”
“요단강.”
“맞아. 세례 요한이 늘 하던 것처럼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찾아왔어. 그리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는 거야. 세례 요한이 높아, 예수님이 높아?”
“예수님이오.”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세례를 줘야 맞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 안된다고 사양을 했어.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이 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설득하는 거야.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어. 예수님을 물 속에 푹 넣었다가 일으킨 거야.”
“저 옛날에 세례하는 거 본 적 있어요.”
“그래? 어땠어?”
“목사님이 사람을 잡고 뒤로 넘겼는데, 뒤에서 사람이 잡아줘서 물에 빠뜨렸다가 다시 세워줬어요.”
“침례하는 걸 봤구나.”
“그런데 머리가 엉망이 돼서 정말 웃겼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침례 받을 때 사진을 찍으면 물미역 흑역사가 남을 수도 있어. 아마 예수님도 그랬겠지.”
“목사님도 세례 해봤어요?”
“나는 장로교 목사라서 침례는 안 해봤고 작은 그릇에 물을 담아서 손가락으로 머금었다가 세례 받는 사람 머리에 흐르도록 했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보니까 어땠어?”
“그저 그랬어요.”
“그랬구나.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례를 받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 뭐라고 했는지 17절 ‘말씀하시되’ 다음부터 같이 읽어줄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린 거야. 이때 예수님 기분이 어땠을까?”
“좋았을 것 같아요.”
“만약 하나님이 하늘에서 음성을 들려주신다면 니네들은 어떤 내용의 음성을 듣고 싶니? 한 명씩 말해보자.”
“저는 제 미래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어요.”
“왜?”
“지금도 이런데 미래도 이러면 너무 싫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 네가 바꿀 수 있어.”
“저는 ‘수고했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요.”
‘수고 많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라는 아이까지 포함하면 총 세 명이 이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이 지네들도 힘겨운 모양이다.
처음부터 비행청소년이 되고 싶은 아이가 어디 있겠나.
3분의 2는 가정이 해체되고 돌봐줄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담배도 피고, 이성교제도 하고, 학교도 빠지고, 가출도 했다.
청소년이 아주 못된 짓을 저지르면 거의 소년원으로 간다.
청소년회복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저녁에 귀가하면 사람들이 있고 지어준 밥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가정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교화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 말을 연이어 들을 때 마음이 짠했다.
“저는 ‘용서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하나님이 니 죄를 용서해주셨으면 좋겠어?”
“예.”
“저는 ‘너도 잘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격려의 말이 듣고 싶구나.”
“저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라고 듣고 싶어요.”
“잘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 목사님~~~~”
“아마도 하나님은 니네들이 원하는 음성이 아니라 니네들에게 필요한 음성을 들려주실 거야. 언젠가 들려주실텐데 다만 니네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해. 니네들이 귀를 막고 ‘아~~’하고 소리 지르고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잖아. 하나님이 니네들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봐. 자기 전에 ‘하나님, 저에게 필요한 음성을 들려주세요.’라고 기도도 해보고.”
“기도하면 들을 수 있어요?”
“솔직히 ‘듣고 싶다, 듣고 싶다’하는 그때는 잘 안 들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자기 ‘앗, 하나님 음성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잘 기다려 봐.”
“예.”
“오늘 성경 이야기 들은 소감을 말해줄래?”
“회개에 대해서 배운 것 같아요. 요단강에 대해서도 배우고.”
“어떻게 회개하면 좋을지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외외로 ‘살아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아이가 세 명이나 됐다.
그 말은 내가 기꺼이 해주겠다고 했다.
“니네들 모두 살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