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7절까지 일단 읽고 시작하자. 오늘은 어느 쪽으로 읽을까?”
보통은 내가 첫 절을 읽은 후 오른쪽으로 도는데, 가끔 왼쪽에 앉은 아이가 자기가 먼저 읽겠다고 자원하기도 하고, 가끔 오른쪽에 앉은 아이가 “왜 꼭 저부터 읽어야 돼요? 쟤부터 읽게 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해서 왼쪽으로 돌기도 한다.
“다 읽었으면 오늘 내용에서 모르는 단어 말해줄래?”
“광야가 뭐예요?”
“앞에서 ‘유대 광야’를 하면서 설명을 했는데. 기억해 볼래?”
“생각이 안 나요.”
“사막 같은 곳이라고 말해줬는데.”
“아~ 들은 기억 나요.”
“들은 적 없다고 하면 내가 상처 받을 뻔했는데, 기억 해줘서 고맙다. 또 다른 사람은?”
“‘수종’이 뭐예요?”
“옆에서 심부름하면서 섬겨주는 걸 말해. 또?”
“스불론과 납달리요. 가버나움도요.”
“이건 셋 다 지명이야. 스불론과 납달리는 우리나라로 하면 경상남도, 전라북도같은 좀 큰 지역 이름이고,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북부에 갈릴리라는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북서쪽 연안의 마을 이름이야. 또?”
“없어요.”
“오늘은 지명 말고는 별로 어려운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좋아, 시작해 보자.”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이야. 이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반 상식으로 말할 정도로 유명한 내용이니까 잘 듣고 기억했다가 나중에 써먹어.”
“예.”
“사람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는 이유가 뭘까?”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요.”
“그래. 사람이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질문 해도 돼요?”
“물론. 궁금한 게 있으면 내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언제든 질문이 있다고 하면 돼. 궁금한 게 뭐야?”
“마귀는 누구예요?”
“좋은 질문이다. 마귀가 누군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질문 하나 할게. 귀신이 있을까 없을까?”
“없어요.”
“그렇지?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지금이 과학이 발전한 21세기인데 귀신이 없을 것 같지? 성경에는 귀신이 있다고 말할까, 없다고 말할까?”
“없어요.”
“아닌데.”
“그럼 목사님은 귀신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성경은 귀신이 있다고 하냐, 없다고 하냐를 물었잖아.”
“성경은 하나님 이야기만 있으니까 귀신이 없는 것 아녜요?”
“아니, 성경에는 귀신이 있다고 적혀 있어.”
“진짜요?”
“특히 예수님이 나오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와.”
“아~ 갑자기 무섭네.”
“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섭게 생겼어요.”
“무섭게 생겼겠지.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헤어스타일은 어때?”
“머리를 길게 풀었어요.”
“옷은 무슨 색깔이지?”
“흰색이요.”
“바지를 입고 있나?”
“귀신은 한복을 입는데요.”
“그러면 중국 귀신이나 미국 귀신도 머리 풀고 한복을 입을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
“남자 귀신도 흰 옷을 입을까?”
“남자 귀신은 까만 옷을 입었던 것 같은데요.”
“귀신은 어떻게 생긴 거지?”
“원한을 갖고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 아닌가요?”
“ㅎㅎㅎ 지금 니네들이 말한 귀신은 옛날 TV에서 했던 ‘전설의 고향’에 나온 귀신이고 진짜 귀신의 모습이 아니야. ‘귀신’은 중국과 한국의 토속 신앙이 모든 영적인 존재를 부르던 말인데,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뭔가 창백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된 거야. 그런데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면서 적당한 단어가 없으니 ‘귀신’이라고 부르게 됐어.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귀신의 원래 의미는 ‘악한 영’이야. 그럼 반대로 ‘착한 영’은 누굴까?”
“하나님?”
“그렇지, 하나님은 착한 분인데. 귀신하고 동급으로 놓고 말할 때 착한 영은?”
“천사.”
“오~ 맞았어. 성경은 악한 영은 귀신, 착한 영은 천사라고 해. 악하고 착한 기준이 뭘까?”
“모르겠어요.”
“하나님에게 속해서 명령을 들으면 착한 영, 하나님을 떠나면 악한 영이야. 이 성경의 기준은 아주 독특한 부분이라서 잘 기억해야 돼. 악한 영과 착한 영의 기준이 뭐라고?”
“하나님.”
“아주 좋았어. ‘영’은 사람처럼 정해진 형체가 없어. 그래서 꼭 사람처럼 생겼다고 할 수도 없지. 그런 귀신들이 버글버글하게 많거든. 귀신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렇지 않니?”
“맞아요. 귀신이 보이면 못살 것 같아요.”
“솔직히 예수님이나 귀신이나 다 안 보여서 좋아.”
“예?”
“나도 집에 가면 옷 벗고 누워서 쉬고 싶고, 화장실에도 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계속 보이면 내가 편하게 쉬거나 화장실에 갈 수 있겠니?”
“아~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예수님이 우리 불편할까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그리고 귀신들도 보이지 않게 하신 거지. 그 귀신들이 따르는 대장이 바로 ‘마귀’야. 다른 말로는 ‘사탄’이라고도 해.”
“사탄은 들어봤어요.”
“마귀 또는 사탄이란 놈이 귀신들의 대장인데, 얘가 사람들의 욕심을 가지고 유혹에 빠뜨리거든. 그런데 예수님은 무슨 욕심이 있었길래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까?”
“예수님은 욕심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니예요?”
“사람이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피곤해서 자고 싶은 걸 ‘수면욕’이라고 하고, 배고파서 먹고 싶은 걸 ‘식욕’이라고 하잖아. 적당한 욕심은 사람으로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거야. 다만 과도하고 더러운 욕심을 버려야지. 예수님이 그런 욕심에 빠져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았을 리가 없지. 1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표현이 있어.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수님은 욕심에 빠져서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에 이끌려서 일종의 테스트를 받은 거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마귀에게 확실히 드러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