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만났어. 그런데 부모님이 깜짝 놀란 건 열두 살인 예수님이 요즘으로 하면 예루살렘의 교수님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깜짝 퀴즈! 예수님이 살던 마을이 어디라고?”
“이스라엘!”
“아니,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잖아. 예수님이 살던 마을 이름이 뭐냐고?”
“예루살렘!”
“아니, 예루살렘은 집을 떠나 방문한 곳이잖아.”
“베들레헴!”
“아니, 거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고.”
“힌트를 주세요.”
“석 자야.”
“가나안!”
“ㅎㅎ 안되겠다. ‘나사렛’이야.”
“아~ 나사렛. 저 알아요.”
“당연하지. 내가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나사렛은 완전 시골의 산골마을이거든. 그런데 그런 곳의 6학년 아이가 서울대학교 교수님들과 토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사건이 벌어진거야.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니까 그렇죠.”
“그래, 맞아. 예수님은 겉으로는 열두 살 아이였지만,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당시 교수님들과도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었어. 이걸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야.”
아이들은 몇 번씩 설명해 준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허탈하게도 만들지만, 가끔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정확하게 말해서 놀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그걸 제대로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평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에 비하면 놀랍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모가 드디어 예수님을 불렀어. 예수님의 어머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마리아!”
“오케이, 예수님의 아버지는?”
“모르겠는데요.”
“요셉이야. 기억해 둬.”
“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우리가 얼마나 너를 찾았는데 너는 어떻게 여기 태평하게 앉아서 이러고 있니?’라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예수님이 뭐라고 했게?”
“잘못했어요.”
“아~ 기발한 대답인데, 성경에 나와있는 내용은 아니야. 우리가 이미 다 읽었잖아. 49절에 나와 있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이 이런 대답을 하신 거야. 좀 엉뚱한 대답 같지 않니?”
“예수님이 4차원이네요.”
“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도 예수님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했어. 그래서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는 그곳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잘 새겨두었다고 했어. 예수님은 다른 가족들과 같이 집이 있는 나사렛으로 돌아갔어. 니네들 혹시 예수님이 인도에 유학했다는 이야기 들어봤니?”
“아니오, 예수님도 유학했어요?”
“아니, 성경에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이 사건 이후로 청소년기의 기록이 없거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그 사이에 인도에서 유학했다고 소설을 쓴 거야. 성경은 예수님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기록한 책이 아니야. 예수님이 왜 구원자인지를 설명한 책인데, 사람들 중에는 성경을 읽으며 성경이 알리고자 하는 바를 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니네들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 설명 잘 듣지 않고 엉뚱한 상상을 할 때가 있지?”
“엉뚱한 상상 안하는데요.”
“그러면? 수업을 잘 들어?”
“아니요. 자요.”
“그러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니?”
“아니요. 안깨우는데요.”
“아~ 그렇구나. 아무튼 성경에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마지막 52절 같이 읽어보자.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지혜와 키가 자랐다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이 그 동네에서 쭉 성장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어. 게다가 유대인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이 일찍 돌아가셨대. 그래서 예수님이 요즘 말로 하면 소년 가장이 된 거야. 예수님은 서른 살까지 목수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어. 동생도 여러 명 있었거든. 나중에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우습게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만약 예수님이 유학을 하고 왔다면 ‘유학하고 오더니 확실히 다르다.’며 인정했겠지. 자기 동네에서 먹고 살기 바빴던 걸 뻔히 아는데 갑자기 혼자 아는 척하고 고상한 이야기를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아니꼬왔던 거야. 오늘 확실히 할 것은 예수님은 유학을 했다, 안했다?”
“안했다.”
“좋았어. 나중에라도 예수님이 어디서 유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넘어가면 안된다.”
“예.”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