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20분 전에 둥지에 도착한다.
물론 편의점에 들러 스니커즈를 인원보다 두세 개 많게 샀다.
먼저 나눠줄 성경공부 교안을 이름을 확인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그날 가르칠 내용과 질문할 내용을 다시 점검한다.
아직 스니커즈는 꺼내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8시 5분 전에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온다.
설거지 당번은 조금 늦게 온다.
“목사님~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 나도 보고 싶었어. 근데 나보다 이게 더 보고 싶었지?”
그러면서 스니커즈를 꺼낸다.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간식 없어도 우리는 목사님 좋아해요.”
“그럼 다시 넣을게.”
“아니 아니 아니에요. 일부러 사오셨는데 먹어야죠.”
“지난 주 공부한 것 기억나니?”
“아니오.”
“그래, 너무 기억을 잘하면 내가 가르치는 맛이 없잖아. 계속 적당히 잊어버려라.”
“네~”
“반장, 공부하자.”
“차렷~”
“경례~”
“사랑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5:1-11을 읽을거야. 오늘은 어디부터 읽을까? 오른쪽?”
“아니오. 왼쪽으로 읽어요.”
“그래, 그럼 왼쪽부터 읽자.”
“목사님, 늘 하던대로 오른쪽부터 읽어요.”
“그럼 가위바위보 하자.”
평소엔 아무 일 없이 오른쪽 아이부터 잘 읽다가도 자기들끼리 뭔가 삐걱거린 일이 있었다든지 하면 괜히 시비를 걸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시시비비를 따져주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한 분위기가 흘러도 모른 체하고 진도를 나간다.
“지난 주에 예수님이 베드로는 제자 삼고 새 이름을 지어주신 것 기억하니?”
“기억나요.”
“베드로의 의미가 뭐더라?”
“힌트를 주세요.”
“딱딱한 것.”
“돌!”
“맞다, 바위도 돌이니까. 그런데 베드로가 새 이름을 받았다고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야. 베드로의 원래 직업이 있었어. 뭘까?”
“몰라요.”
“아무 생각 없이 모른다고 하지 말고 오늘 읽은 내용 다시 봐봐.”
“어부!”
“그래. 원래 베드로는 어부였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새 이름을 받고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게 아니라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어. 왜 그랬을까?”
“베드로도 먹고 살아야죠.”
둥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조금 이상하게 느낀 것은 거의 예외없이 돈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배금주의에 빠진다고들 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한참 꿈을 꾸고 이상을 말해야 할 아이들의 여러 표현에서 그 부분이 느껴질 때 서글프고 안타까왔다.
다른 한편으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어른들일테니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 베드로도 먹고 살아야지. 베드로가 새 이름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특별한 걸 시키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래서 슬그머니 예수님을 떠나서 자기가 늘 일하던 곳으로 돌아갔지.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거야.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까 예수님이 어디로 가면 늘 사람들이 따라다녔어.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도 함께 온 거지.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적당한 장소가 없으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물에서 조금 떨어지게 한 뒤 거기에 혼자 타고 사람들은 호숫가에 앉게 한 뒤 말씀을 전하셨어.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갑자기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거야. 당시 그 호수에서 어부들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냐면 밤에 물고기를 잡았대. 니네들 혹시 밤에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보면 거기 환하게 빛나는 것 본 적 있니?”
“네. 그거 오징어잡는 배 아니예요?”
“오징어를 잡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다에서 뭘 잡으려면 밤에 잡는 게 좋은가봐. 거기도 그랬거든. 그런데 예수님이 낮에 호수 한가운데까지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잖아. 예수님의 전직이 뭐라고 했지?”
“예수님이 직업이 있어요?”
“어릴 때 예수님을 길러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서 일을 했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요.”
“목수라고 했잖아.”
“아, 맞다. 목수.”
“예수님은 전직 목수이고, 베드로는 현직 어부인데 누가 물고기를 더 잘 잡을까?”
“예수님요.”
“이건 너무 목사를 기쁘게 하려는 대답이야. 너무 믿음으로만 대답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봐.”
“베드로요.”
“그래,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거기서 물고기를 잡고 살았던 사람이니까. 베드로는 어젯밤 밤새 잠도 못 자고 물고기를 잡다가 허탕치고 오늘밤 잡으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잖아. 니네가 만약 베드로라면 어떻게 했겠니?”
“집에 가서 자야죠.”
“그런데 베드로는 ‘순종하겠습니다.’ 하고선 다시 배를 띄우고, 깊은 데로 가고, 그물을 내린 것야. 그런데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어. 기적이 일어난 거지. 다른 배를 불러야 될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어. 만약 니네가 베드로라면 기분이 어떨까?”
“대박 났잖아요.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그런데 베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 베드로가 어떻게 했는지 8절을 같이 읽어줄래?”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잘 읽었다. 베드로는 니네들 말대로 대박 났는데 왜 이랬을까?”
“죄가 많아서요.”
“그래, 베드로도 죄인이니까. 그것 말고 지난 주 이야기와 이어서 잘 생각해봐.”
“모르겠어요. 그냥 이야기해 주세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잖아. 하지만 할 일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베드로가 슬그머니 자기 직업으로 돌아왔잖아. 그런데 예수님이 멀리 베드로를 찾아오신 거야. 그런데 슬그머니 떠나온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물고기를 무더기로 잡게 해주신 거잖아.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부담스러웠던 거지.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인데 니가 감히?’라며 자기가 슬그머니 떠난 것에 대해 질책을 할까봐 겁도 나고.”
“베드로가 벌을 받았어요?”
“아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제는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하시며 다시 제자를 삼아주셨어. 그랬더니 같이 물고기를 잡았던 사람들까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어. 이 사건의 중요한 교훈은 예수님은 사람에게 여러 번 찾아와서 마음을 두드리신다는 거야. 니네들 혹시 예수님이 문을 노크하는 그림 본 적 있니?”
“아니오.”
“있을텐데… 세대차이가 너무 나서 모르는 건가? 잠깐만 내가 폰에서 찾아서 보여줄게.”
놀라운 것은 절반 이상이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처럼 예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셔. 한 번이 아니고 오늘 베드로를 멀리 찾아오셨던 것처럼 여러 번 두드리셔. 예수님은 인격적이어서 여러분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셔.”
“저는 한 번도 두드리신 적이 없는데요. 언제 두드리세요?”
“예수님이 그림처럼 직접 두드리시는 게 아니야. 이제는 다른 사람을 통해 두드리시지. 지금 여기에서는 나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거야. 마음의 문을 연다는 건 예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걸 의미하거든.”
“예수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좋겠어?”
“그럼 잠깐 기도하자. ‘예수님, 둥지 아이들이 예수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제가 아이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이왕이면 직접 두드려 주시면 좋겠답니다. 오늘밤 꿈속에서라도 예수님이 두드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말 원하는 사람은 자기 전에도 이렇게 기도하고 자라.”
“네.”